늦여름의 납량 - 피바람을 부르는 조선시대 NTR 어둠속의 성서

추억의 '전설의 고향' 중 인상깊은 이야기.

가을이 한걸음 온듯했다가 다시 늦더위가 기승을 부르는 무더운 밤의 썰렁한 이야기.

제목 그대로 10년전 KBS납량특집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습니다. 당시 보면서 찝찝한 기분이 들게 했던 그 소재가 훗날 물건너에서 NTR이라는 용어로 정립됨을 알게 된건 좀더 뒤의 일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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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세차게 내리던 어느날밤, 깊은 산길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과거를 보러 궂은 날씨에도 길을 서두르던 한 선비(이하 '백선비')가
갑자기 나타난 복면괴한의 칼에 맞아 숨을 거둔 것.

그 험한 첩첩산중에서 일부러 나타나 재물도 별로 없어뵈는 백선비를 살해한
의문의 살인범은 그대로 오리무중이 되고, 결국 백선비의 죽음은 관아에서도
산적의 소행이라고 덮어버리고 말았는데.



거기서 또 시간이 흘러 이번엔 고요한 달밤의 다시 깊은 산길.
역시 과거시험에 맞춰 한양으로 향하던 젊은 청년 이도령(탤런트 이민우 씨 분)은
길을 잃어 곤란해하던차에, 마침 눈앞에 외딴 집을 발견해 하룻밤을 청하게 되었는데.

물어보니 그 집은 상중이었으며,
얼마전 과거를 보러가던 남편이 산적에게 변을 당했다 하고
지금은 과부가 된 부인 박씨와 어린 시동생 둘만이 남아 상을 치르고 있었다.
근데 그 아내가 정말 절색이라 이도령도 잠시 혹할 정도였으니.



그날 잠을 청하려던 이도령의 방에 갑자기 찾아온 박씨 부인.
시동생은 잠시 상중에 준비할게 있어 마을로 떠나 집에 우리 둘뿐이라 하는데.
부인이 밝히길 남편은 죽기 전부터 책만 파느라 관계가 요원했다 하며,
그나마 남편이 죽어 청상과부가 된 차에 오늘 늠름한 이도령의 얼굴을 보니
더더욱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마침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차에 깜짝 놀란 이도령이 부인을 말리려던 차에
별안간 문 그림자에 비치는 칼에 맞아 죽은 남편 백선비의 원혼!!
구슬픈 목소리로 부인을 찾는 귀신 앞에서 둘은 아연실색하는데
눈떠보니 이게 다 이도령이 꾼 꿈이었더라.

정신차리니 참 머쓱한 이도령.
명색이 선비가 꿈에서 수절부인을 탐하니 참 한심하다고 반성하고
마당우물서 냉수나 한바가지 떠마시려고 방을 나왔는데,
아니 어느 험상궂은 칼찬 괴한이 부인 방으로 들어가는게 아닌가.

생각하니 부인과 어린 동생이 산다고 하니 도적이 들이닥쳤구나 싶은 이도령이
마침 눈에 띈 돌절구채를 들고 부인을 구하려고 숨죽이고 방으로 항하는데,
놀랍게도 흘러나오는건 비명이 아닌 바로 그 부인의 간드러진 웃음소리.



알고보니 그 도적과 부인은 백씨가 죽기 전부터 간통하고 있었으며,
몰락한 양반집의 그나마 남은 산과 전답을 노리고 과거보러가던 남편을
둘이 짜고 살해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무것도 모르는 시동생도 죽이고 땅문서 다 챙겨
도망가려던 차에 이도령이 찾아와 거사를 미루게 된것.

내일 아침 저 손이 떠나고 시동생이 돌아오면 죽이자고 공모하는 두 악한 남녀의 계획에
이도령은 자기가 너무 억울하고 기가 막혀 한숨만 나올 뿐이니.


'허허...천하의 요조숙녀인줄 알았더니, 저리 간악한 독부일 줄이야.'


못된 꾀를 신나게 떠들어대던 악인들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던 이도령,
그 둘이 방을 나오자 결국 "네 이놈들!"하며 절구채를 들고 덤벼들었다.

그렇게 마당에서 칼과 절구채를 휘두르며 일장활극을 벌이는 이도령과 도적.
역시나 칼 좀 쓰는 괴한에게 이도령이 밀리던 차에 부인이 도적돕는다고 부엌칼 들고 가세하는데,
이번엔 꿈이 아니라 진짜로 남편 백선비의 혼령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혼비백산해 칼을 휘두른 부인.
그러나 그 칼이 찌른건 백선비 귀신이 아니라 저와 간통했던 도적놈이었다.
그 와중에도 죽은 남편의 목소리는 들리고 결국 부인은 정신이 나가 정신없이 달리다가
인근 절벽에 떨어져 죽어 죗값을 치루고야 말았다.
역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던 이도령도 정신없이 그대로 길을 떠났으니….



여러가지 착잡한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 이도령.
언덕길에서 잠시 쉬어가자니 옆에 다른 양반 한명이 투덜거리면서 앉는데,
글쎄 과거시험이 갑자기 한달 일찍 치러져 이미 끝나버렸다지 뭔가.

"시험문제로 나온 중국 누구누구 시인은 내가 정말 잘 알았는데"라며
툴툴거리는 양반 옆에서 역시 시험을 놓쳐버린 이도령도 그저 허탈할 뿐.

이번엔 때가 아니었다 싶어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이도령, 날이 새고
들른 주막집서 요기나 하려고 가는데 어째선지 선비들이 드글드글하다.
물어보니 한양으로 다들 과거를 치르러 간다네?
과거는 이미 한달전에 보지 않았냐고 이도령이 물어도 되려 정신나간 취급만 받는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건가 하며 일단 한양으로 간 이도령.
과연 시험은 예정대로 치뤄지고, 문제도 그 중국 모모시인의 얘기가 분명하더라.
이도령이 답을 술술 써내려간건 말할 것도 없겠다.



당당하게 급제해서 내려가던 길에
이도령은 며칠전 겪은 일이 생각나 그 집 방향으로 다시 향하니
마을 입구에 왠 못보던 열녀문 하나가 세워져있다.
근처 노인분 붙잡고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이유가 참 가관이더라.


"이게 뭐냐면, 얼마전 수절을 지키려다 죽은 박씨란 부인을 기리는겁니다.
남편을 잃고 상을 치르던 집에 도적이 든걸 부인이 어찌저찌 물리쳤건만
몸을 더럽힌 수치를 참지 못해 스스로 절벽에 몸을 던지지 않았겠소?
아침에 돌아와 사실을 안 시동생이 관아에 고하고 수령이 이를 기려
부인의 넋을 달래는 열녀문을 세워준 것이지요."


이도령은 듣다듣다 기가 막혀 말을 잃고,
자랑스럽게 높이 세워져 위용을 뽐내는 열녀문을 그저 처다볼 뿐이다.



그리고 그날밤 길을 가던 이도령은 어느 호젓한 강가의 정자를 지나치는데,
그 정자에서 이도령을 기다리던건 바로 얼마전 그에게 시험문제를 가르쳐준 그 선비다.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하고 선비 앞에 앉은 이도령.
선비는 죽은 자신을 대신해 싸우고 자기 동생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이어 이도령이 제가 나서 진실을 밝히고 백선비 한을 마저 풀어주겠다 하자
고개를 저으며 웃을 뿐이었다.


"아닙니다. 제가 학문에만 정신팔려 아내도 여자라는걸 몰랐던 탓이지요.
거기다 저와 부인을 자랑스래 여기고 있을 제 동생에게,
굳이 이 슬픈 일을 알리며 세상일에 실망감을 안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선비님 말대로 하겠습니다."


이에 예를 표하는 백선비.
이제 지옥불에서 신음하는 부인의 업보가 하루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라고 한다.
순간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정자도 사라지고 강가에 혼자 서있는건 이도령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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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전설의 고향에서 추구하던 귀신의 섬찟한 비주얼보다도 줄거리 구성과 내용이 쓰디쓴 다른 의미로 납량특집이랄까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덕분에 본지 10년이 지났어도 기억에 남을 정도였으니까요.

뒤의 여느때의 진행자 독백에 따르면 그나마 다른 것과 다르게 실제 전설이나 괴담을 토대로 삼지 않은 완전한 가공의 스토리였다는게 그나마 다행인지 뭔지.

내일부터는 날씨가 풀린다군요. 모든 포스가 함께 하시기를.

덧글

  • 구라펭귄 2011/09/02 21:34 # 답글

    날은 지금부터 확 풀린거 같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휙휙 부네요 ^^
  • 望月 2011/09/02 23:43 # 답글

    참 씁쓸하네요. 백선비는 잘됐지만..
  • 김윤정 2011/09/03 10:42 # 답글

    참 탄탄한 시나리오 전개로구만요
    역시 전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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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되리라,

낡고 슬픈 이 땅에선
환희는 빌려야만 하고,

고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득하니까.

노래하라,
언덕들이 응답하리라

탄식하라,
허공에 흩어지고 말리라

메아리들은 즐거운
소리에 춤을 추지만

너의 근심은 외면하리라.



기뻐하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슬퍼하라,
그들은 너를 떠날 것이다.

사람들은 너의 즐거움을
원하지만

너의 고통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즐거워하라,
그러면 친구들이 늘어날
것이다.

슬퍼하라,
그러면 그들을 다 잃고
말 것이다.

네가 주는 달콤한 술은
아무도 거절하지 않지만

인생을 한탄할 때는
너 홀로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축제를 열라,
그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쳐나리라

굶주리라,
세상이 너를 외면할 것이다.

성공하여 베풀라,
그것이 너의 삶을
도와주리라.

하지만 아무도 죽음은 막지 못한다.

즐거움의 방들엔
여유가 있어
길고 화려한 행렬을
들일 수 있다.

하지만 좁은 고통의
통로를 지날 때는

우리 모두는 한 줄로
지나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