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한국인 악역 캐릭터, '김용비' 동영상의 찬미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끌리는 면이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꺼리는 명작복싱만화 '내일의 죠', 그중에서도 독특한 매력이 있는 캐릭터 김용비에 관하여. 건너 스포츠만화의 보기 드문 한국인 캐릭터로서 비중있는 적으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는데요.

원작의 중후반부에서 리키이시의 죽음에 의해 엄청난 방황을 했던 주인공 죠가 카를로스와의 시합을 계기로 완전부활하던 차에 갑자기 그 앞을 막고 나타난 동양급 챔피언. 세계챔피언 호세 멘도사를 노리던 죠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통과점이었습니다만 단순한 조연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의 강적들과 필적하며 어떤 의미로는 전혀 만나보지 못했던 미지의 적수로서 가히 중간보스급의 위용을 내보였습니다.

김용비에 관해서는 작품 외적으로도 여러가지 일이 있는데요. 먼저 원작만화의 배경은 1970년대로서 한국전쟁 때 유년기를 보낸 김용비는 20대 초중반으로 별문제없는 나이였지만, 이 에피소드가 들어간 TV판 2기 애니메이션은 배경이 80년대로 바뀐 탓에 뜬금없이 30대 후반의 노장복서가 되어버렸습니다.; 다만 고령에도 20대의 체력을 지녔다는 설정이 붙긴 했지만.

거기다 그 출생과 충격적인 과거에피소드가 문제가 되어서 국내정발판에서는 태국 출신의 복서 '킹코브라'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고, 또 2기를 방영중이던 MBC에서는 아예 방송을 접어버리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다시 작품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일본에 원정시합을 하러 온 김용비의 스파링을 보러 왔다가 놀라는 단페이 관장. 김용비는 평소에도 차갑고 냉정한 시합운영으로 '컴퓨터 복서'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단페이는 그걸 넘어서 '마치 인형처럼 차가운 감정없는 유리구슬같은 눈빛'이라 평합니다.

아무래도 복서는 사람을 때리는게 일인지라, 결국 자신의 주먹으로 남을 상처입히기에 누구나 조금씩은 그에 대한 꺼림칙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고 하는데요. 일단 죠도 리키이시를 죽음으로 몰고가서 큰 충격을 받았었구요.

허나 저 김용비는 그런 거리낌이 전혀 없으며, 그의 권투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때문에 항상 기계처럼 차분하게 상대를 관찰하며 또 기계처럼 정확한 공격을 자유롭게 구사한다는데.






거기다 김용비에게 끌리는 또한가지 이유는, 그가 '내일의 죠' 뿐만 아니라 당시 스포츠만화의 정석처럼 쓰이던 헝그리정신과 근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철저한 안티테제격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김용비와의 동양타이틀매치를 앞두고 죠는 성장기로 몸이 계속 자라는 바람에 체급을 유지하기 위해서 설사약을 잔뜩 먹고 사우나에 들어가거나 병원에 가서 피를 뽑는 등 가히 고문에 가까운 감량을 계속했는데요.

결국 감량에 성공하고 시합 직전에 컨디션을 되찾기 위해 가볍게 식사를 하던 죠 앞에 나타난 김용비는 그런 소위 '굶주림을 자랑하는듯한 일본 헝그리복서의 유치한 자기만족'을 비웃으며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냅니다.






김용비가 들려주는 지옥같은 과거.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 그가 한국전쟁 다시 겪은 일입니다.

아직 5살의 나이로 피난길에 오른 김용비는 눈앞에서 어머니를 폭격으로 잃고 혼자서 몇날며칠을 굶주리며 방황하다가 한 군인을 발견하고 그를 돌로 쳐죽이고는 그 식량을 빼앗았는데요. 하지만 돌에 맞은 그 군인은 분노하긴 커녕 오히려 용비에게 다가서 뭔가 필사적으로 말하려고 애쓰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군인은 바로 김용비의 아버지! 전쟁 때 군에 강제징집되었지만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 식량을 가지고 탈영했다가 탈진해 쓰러졌던 차에 아들인 용비를 만나서 그를 알아봤던 겁니다. 하지만 워낙 행색이 헝크러진데다 배고픔에 정신이 나간 어린 아이였던 용비는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비극이었던 것.

사실을 알게 된 김용비는 그자리서 음식물을 다 토해버리고, 용비의 아버지를 찾으러나왔던 부대 소대장에게 거둬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대장은 지금 대령이 되서 김용비의 코치가 되었구요. 그리고 그 사건 이후로 김용비의 위장은 성장하지 않은채 5살 그대로 남게 되었다고.






이렇게 참혹한 일을 겪은 김용비에게 있어 복싱의 감량같은건 평화로운 세계에서 배불리먹어본 이들이 투정하는 유치한 장난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거기다 룰과 글러브로 보호받은 채로 상대를 때리기만 하면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복싱이란 것은 자신에게 매우 쉬운 소꿉놀이에 불과한 것이며, 죠는 헝그리복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제어도 못하는 배부른 복서라고 비웃습니다.

즉, 이제까지 '내일의 죠'가 그리던 미학에 완전히 정면으로 배치되는 그야말로 상극의 캐릭터인거지요 넵. 근성만화에서 근성을 철저하게 씹어주는 모습만을 보이니 오죽하겠습니까.






그러한 김용비의 모습에 질린 죠는 처음으로 시합 직전에 불안한 모습을 보입니다.

리키이시나 카를로스는 자신과 똑같은 불꽃이기에 시합을 하면 함께 불타오르며 모든 힘을 한계까지 발휘할 수 있었지만 저 김용비는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얼음이며, 저런 녀석과 시합하면 뭘 어떻게 해야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김용비란 인물 뿐만 아니라 저 동양타이틀전 시합 자체도 덕분에 '내일의 죠' 안에서도 독특한 성격을 띄며 꽤 재미있었습니다.

예상대로 고전하던 죠는 리키이시를 생각하며, 결국 김용비도 자신의 체질에 만족하는 물렁한 면이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멋지게 역전승을 거둡니다만….






보통 내일의 죠에서 라이벌하면 누구나, 최고의 적수였던 리키이시와 무적의 챔피언 호세 멘도사를 떠올리겠지만 저 김용비도 그에 못지 않은 매력을 지닌 상대였다고 생각해요. 위에서도 몇번이나 언급하지만, 그동안 죠가 당연히 믿고 행하며 작품의 정석으로 쓰이던 '헝그리정신과 근성'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속성이라는게 참 먹혔지요. 오락실용 액션게임 '내일의 죠'에서도 당연히 출연하기도 했고.

아마 물건너 스포츠물의 한국인 캐릭터로서 가장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모든 분들에게 포스가 함께 하시기를.

핑백

  • 잠보니스틱스 : 오늘의 상큼한 잡동사니 2010-02-20 23:54:13 #

    ... 얼마나 생명력이 질긴지를 보여주는 사례. ★남자를 빨아먹는 여악마 서큐버스 전설과 그 전승에 대한 탐구 (월광토끼님) 그 기나긴 여정의 종착역은 과연?! ★매력적인 한국인 악역 캐릭터, '김용비' (무희님) 이런 처절한 인생역정이 있었다니! T.T ★내 눈을 바라봐 구세주를 불러봐 (나타라시바님) 두번 부르다간 제명에 못살듯 OTL ★드래곤 ... more

덧글

  • 태두 2010/02/12 21:18 # 답글

    어이쿠. 저기 한국인 캐릭터가 있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가요.
  • 알트아이젠 2010/02/12 21:22 # 답글

    엔하위키를 통해서 보게 됬지만, 단순한 죠의 경험치 캐릭터가 아니군요.
  • 홍당 2010/02/12 21:37 # 답글

    한때 뉴타입에서 소개해줬을때 정말 인상깊었던 캐릭터였죠...
    그런데 국내 방영 당시에는 창시개명을 당했던(.....)
  • 잠본이 2010/02/12 21:38 # 답글

    저런 충격적인 과거가 있었을 줄은...
  • 녹슨 2010/02/12 21:42 # 답글

    으헉 한국인이었군요
  • Yanz 2010/02/12 21:51 # 답글

    내일의죠는 그 유명한 짤방으로 기억되던 만화인데 이런 괜찮은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군요. 게다가 한국인이라서 더욱 정감이.... 좋은 정보 알아갑니다~
  • 히무라 2010/02/12 22:07 # 답글

    정말 엄청난 상대였죠.... 임팩트가 다른 캐릭터와는 다른의미로 강했던.
  • 정의수호기사 2010/02/12 22:16 # 답글

    흐흨... 왜놈에게 지다니...ㅠㅠ
  • 일렉트리아 2010/02/12 22:44 # 답글

    국내판에선 베트남의 코브라라는 이름의 케릭터였죠
  • 듀라한 2010/02/12 22:58 # 답글

    아...비중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였나...뭐 결국 주인공 보정때문에 지긴했지만...
  • 타이가장관 2010/02/13 02:45 # 삭제 답글

    괴상한 비디오판에는 일본 복서 가네류우히(킨류우히도 아니고...--;)로 등장하기도 하지요.
    공포의 쵸무쵸무(=춤춤)
  • 타이가장관 2010/02/13 02:50 # 삭제 답글

    저도 김용비전을 내일의죠2 에피소드 전체에서 가장 인상깊게 봤는데, 솔직히 이후 호세 멘도사전까지는 조금 느슨(김용비전 이후가 2기에 가까우니)해지는 느낌이네요...
    데자기 오사무 감독의 연출과 각색이 매우 기억에 남네요.
  • 아무리 2010/02/13 17:13 # 삭제 답글

    오픈캐스트 ( http://opencast.naver.com/AM671 )에 링크하겠습니다 :)
  • 덕수 2010/02/13 21:54 # 삭제 답글

    김용비 때문에 1993년 MBC 방영 당시, 도전자 허리케인 방영 중단 당했었죠;;
  • 모네리엘 2010/02/14 13:07 # 답글

    저도 어렴풋이 기억한게... 한국캐릭터가 나온다는 것 정도였지만...

    저 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일본애니나 만화에서 한국 캐릭터 나와도... 정말 뭐랄까 진짜 겉절이 같은 느낌인데..

    저 김용비라는 캐릭은 나름 진정한 조연이군요...(뭐 죠가 주인공이니... 주연까지는;ㅂ;)
  • 쓰레기청소부 2010/02/14 20:52 # 답글

    하지만 역시 멋있기 보다는 악역 캐릭터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작가의 의도였는지 몰라도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 한국인은 상당수가 감정이 없고 매서운 이미지가 강한 경우가 먾지요
  • rumic71 2010/02/18 18:18 #

    예전부터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독종' 이었죠.
  • 오오 2010/02/15 11:58 # 삭제 답글

    헠 전 허리케인 죠 정발만화로만 봤는데 킹코브라가 태국출신이 아니라 원래 한국인이었군요....완전 사기당한 느낌이네요 ㅋ 네이버 오픈캐스트에 김용비라고 떠서 뭐지 이거;; 하면서 클릭 안 하다가 한 번 해봤더니 이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될 줄이야...
  • 나인볼 2010/02/17 00:24 # 답글

    국내 라이센스판에선 동남아인으로 나왔던 인간(...). 어흑.
  • rumic71 2010/02/18 17:37 # 답글

    배경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다시 보니 이렇게 멋질 줄이야!
  • 01410 2010/02/18 17:54 # 답글

    김용비 에피소드는 참 인상적이었지요.
    그런데 이 포스팅을 보니, 당시 김용비라는 "한국 캐릭터"에 일본인들이 투영하고 있는 이미지는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지 않는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일본 우익들이야 여전히 헛소리 찌질대지만 일본의 보통 지식인들 - 예컨대 NHK 좌담프로에 가끔 등장하는 - 은 한국산이라고 하면 저런 이미지를 여전히 갖고 있는 것 같더군요. 일본인으로 하여금 '웃기지 마라' 라고 힐난하는 거울 같은... (재밌는 건 심지어 일본 에능에서조차도 좀 비슷한 포맷으로 등장한다는 겁니다)
  • 클라우드 2010/02/18 18:12 # 답글

    더파이팅 한국캐는 죄다 일자머리에 잡몹인데ㅠ
  • 리언바크 2010/02/18 20:28 # 답글

    <내일의 죠>는 극장판과 2시간짜리 편집판만 봐서 김용비라는 한국인 복서가 나오는 건 몰랐네요.
    내일의 죠 시대배경이 70년대인만큼 김용비가 어린 시절이면 한국전쟁시기였을 수 있겠네요.
    원래 일본도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참혹한 가난에 시달리다가 한국전쟁때 미국의 군사기지가
    되면서 많이 부유해진 국가이죠.(뭐,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어쨌건 내일의 죠에 호세 멘도사 외에도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가 또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네요.
  • 시발하느님제발 2010/02/18 20:48 # 답글

    몰랏던 한국인 캐릭터;; 엄청난 포스군요;;
  • ChristopherK 2010/02/18 21:33 # 답글

    제가 처음봤을 때도, 어느 다른 나라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했는데
    (아부지 이름이 페르난도 였나... 당시 90년대 MBC판.)

    의외의 반전이군요.
  • 삼별초 2010/02/18 21:40 # 답글

    한국에선 정작 공중파에서 방송조차 금지가 되었지요
    투니버스에선 봐꿔서 끝까지 해줬지만...
  • blue 2010/02/18 21:50 # 답글

    와카모토 노리오씨가 연기해서 상당히 멋있게 느껴졌습니다만. 어렸을 때는 죠의 '근성'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는데 나이가 들어서 보니 좀비화 되어 모든 공격이 무력해지는 것으로 느껴져 그저..
  • 에일군 2010/02/18 23:07 # 답글

    코믹스판을 폭풍처럼 몰아보던 시절에 몹시 위화감 들었던 캐릭터지요.
    물론 뉴타입에서 다룬적이 있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코믹판도 정발되면서 설정이 바뀌었지요)
  • 徐賢公 2010/02/18 23:50 # 답글

    이야~ 어렸을때....도전자(?) 허리케인 죠....였나?
    열혈 매니아 였는데...벌써....30년이라니....나보다 나이가 많은...ㅡ_ㅜ"

    어렸을때 보던 만화들이...점점....추억의 만화로 넘어가 버리는 슬픈현실....
  • icaruscoromic 2010/02/19 06:18 # 답글

    처음보는 캐릭터지만 멋있군요.
    다만 죠에게 발린후가 궁금한데... 읭.
  • ZeroDevice 2010/02/19 17:32 # 답글

    ... 전쟁 과거 이야기를 읽으면서...
    ... '아, 저런 일이 분명 있었을 테지.' 라고 납득하는 제 자신이 더 무섭군요.

    ... 여긴 한국이구나. --;
  • 단세포암살단 2010/02/20 14:17 # 답글

    정말 재밌고 인상깊게 본 만화였습니다. 내일의 죠에 관한 포스팅 재밌게 보고 갑니다 ^^
댓글 입력 영역


고독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되리라,

낡고 슬픈 이 땅에선
환희는 빌려야만 하고,

고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득하니까.

노래하라,
언덕들이 응답하리라

탄식하라,
허공에 흩어지고 말리라

메아리들은 즐거운
소리에 춤을 추지만

너의 근심은 외면하리라.



기뻐하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슬퍼하라,
그들은 너를 떠날 것이다.

사람들은 너의 즐거움을
원하지만

너의 고통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즐거워하라,
그러면 친구들이 늘어날
것이다.

슬퍼하라,
그러면 그들을 다 잃고
말 것이다.

네가 주는 달콤한 술은
아무도 거절하지 않지만

인생을 한탄할 때는
너 홀로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축제를 열라,
그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쳐나리라

굶주리라,
세상이 너를 외면할 것이다.

성공하여 베풀라,
그것이 너의 삶을
도와주리라.

하지만 아무도 죽음은 막지 못한다.

즐거움의 방들엔
여유가 있어
길고 화려한 행렬을
들일 수 있다.

하지만 좁은 고통의
통로를 지날 때는

우리 모두는 한 줄로
지나갈 수 밖에 없다.